스타트업이여, 잠 못 이루는 밤 되소서

Seeyong Lee
4 min readMar 10, 2021

스타트업의 시작은 모름지기 열정으로 가득 찬다. 누구나 애플과 구글을 꿈꾸며 시작하지 않는가. ‘내가 너무 유명해지면 나와 가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당하지 않을까’하는 확률 낮은 상상까지 닿기도 한다. 한 달, 두 달, 반년, 일 년이 지난다. 열정은 어느새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단어가 된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 같아서든, 열정을 논하기에 너무 치기 어린 모습으로 비칠까 부끄러워서든, 열정이 실제로 사라졌든. 어떤 이유에서든 창업가와 기업은 영혼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 간다.

필자는 어느새부턴가 열정보다 동기부여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열정이라는 단어는 소모를 전제로 한다. 냄비근성, 심한 기복, 열정페이. 모두 소모성을 전제로 하며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 없다. 반면 동기부여는 일종의 체념이다. 열정이라고 부르든 동기라고 부르든 자발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그 무언가가 인간의 한계로 인해 결국 고갈되는 순간이 도래함을 인정한다. 동기부여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기반으로 바라봐야 함은 이런 이유에서다.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열정도 한 시간 뒤면 망각의 바다 저 밑바닥으로 침전해버리기 일수다. 정신력으로 사업을 꾸리는 스타트업 창업가에게는 동기부여 그 자체보다 매 순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능력, 동기부여력이 필요하다. 뛰어난 언변과 화술, 세련된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능력이 응용 학문이라면 동기부여력은 순수 학문이다. 근간이 된다.

동기부여력은 절박함의 세련된 표현이다. 동기부여를 지속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계까지 노력했다는 의미다. 절박한 심정을 사업으로 승화하는 화학적 변환 과정이다.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초창기 스타트업의 특성상 한 사람의 침체만으로도 팀 전체의 사기가 저하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본인이 왜 지금 하기 싫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꾸역꾸역 억지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면 어떻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 할 수 있을까. 개중 최악은 창업자의 침체다. 기업의 존폐 여부가 달린다. ‘지금 나는 절박함이 있는가’, ‘동기부여로 승화하고 있는가’. 솔찬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동기부여의 원천은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는 ‘내가 기획한 바가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 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벌겠다’는 명분을 동기부여로 삼는다. 뭐든 좋다. 일단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어도 되고 다니던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당한 무시를 성공으로 복수하기 위한 절치부심이어도 좋다. 말 그대로 가슴 뛰는 생각이 필요하다. 상투적인 표현임을 안다. 그럼에도 본인조차 어찌할 수 없는 들뜬 기분이 찾아올 때가 있지 않은가. 확실한 동기부여는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스타트업에게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 알고 있을 테다.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겨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피드백받아 다시 기획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성장의 선순환. 모든 기업의 시작은 동기부여다. 행동하기 위해 찾자.

Stay hungry, stay foolish. 대부분 문장만 언급하며 故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처음 한 말로 알고 있지만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던 히피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마지막 호 맨 뒷 커버에 쓰인 문구를 인용한 문장이었다. 잡스는 왜 이 문장을 축사의 가장 인상 깊은 결론 부분에 배치했을까. 잡스 자신이 세계 1위의 IT 기업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테다. 배고플 때 밥을 먹듯, 숨 막힐 때 숨을 쉬듯, 뜻을 이루고 싶을 때 갈망하는 모습이 당연했기 때문일 테다. 동기부여력도 근육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작은 운동부터 시작하면 된다. 처음부터 세계 1위의 기업, 사회적 문제 해결부터 시작할 필요 없다. 맛있는 점심 먹을 생각과 친구와 마음 놓고 수다 떨 주말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어느새 세상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생각이 불꽃이 되어 꺼뜨리기 힘들 지경에 이른다. 스타트업이여 부디 절박함을 찾으소서. 동기부여로 승화해 행동으로 옮기소서. 부디 뜻을 펼칠 생각에 가슴 뛰어 잠 못 이루는 오늘 밤 되소서.

*본 글은 ‘경기문화창조허브’와 함께 기획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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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yong Lee

#코배투 CEO. @thepersons_official @mong_to_view 에디터. #숄든 CEO. #CFA charterholder. 비숑 아빠. 비트겐슈타인 옹호자.